etc.
비밀설정
1.청춘
고등학교 시절, 밴드부를 했다.
밴드 이름은 [Active] (가방에 달고 있는 키링도 멤버들과 맞춘 것.) 포지션은 베이스. 실력도 좋았고, 같이 밴드를 하는 친구들과도 호흡이 잘 맞았다.
길거리든, 지하연습실이든, 아니면 구석진 곳의 카페든. 어디 상관없이 공연을 하러 다니고 진지하게 음악을 미래의 목표로 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우리 정말 노래 한 번 내 볼래? 성공해보자.”
의기투합하며 준비하던 중 후세키마을의 신사에 관하여 듣게 된다. 빌기만 하면 백이면 백. 소원을 들어준다나? 그럼 못 가볼 것도 없지. 그리하여 무작정 가방을 싸들고 1박 2일 여행을 떠나게 된다.
2.소원
시작은 좋았다. 작은 마을은 관광 삼아 구경하며, 많은 인파들 사이를 헤치고 들어가 다같이 함께 소원을 빌었다.
“이 밴드가 성공하기를”
단순한 미신일지도 모르지만, 시도해봐서 나쁠 건 없으니까. 괜히 더 의지가 생기는 기분도 들고. 입으로 말하면 이뤄진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작지만 고즈넉한 료칸에서 잘 차려진 음식을 먹고 즐거운 미래를 상상하며 떠들어댔다.
3.사고
“잠깐만, 나 지갑 두고 왔나봐.”
신사에서 떨어뜨렸나? 다행히 아직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어차피 근처니까 금방 둘러보고 오면 되겠지. 친구들에게 말을 하고 료칸을 나와 길을 돌아갔다.
구름에 달이 가려져 생각보다 더 어두웠지만 나쁘진 않았다. 찌르륵, 찌륵. 풀벌레 소리, 길을 비추는 반딧불이. 그리고…
도와주세요. 라는 누군가의 목소리.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런 밤중에 누가? 의문이 떠오르기도 전에 몸이 떠밀리는 걸 느꼈다. 보이는 건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할 시커먼 형체와 나무 뿐. 쿵, 쿵… 이어지는 정적. 전신에 고통이 찾아왔다.
어둡고 사람 한 명 없는 곳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휴대폰을 열어 경찰에 연락하는 것이었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이번 요청은 그의 목소리다
절벽에서 떨어진 후 어깨와 손을 다쳤다. 날카로운 돌에 찍힌 터라 근육이 보일만큼 찢어진 큰 부상이었다. 신경에 손상을 입었다고 했나. 덜덜 떨리는 손가락을 펼치는 것만 해도 힘이 들었다. 회복되면 일상 생활에는 무리가 없다지만, 연주를 하기엔 잔뜩 굳어버린 손이 뻣뻣하고 느리게만 느껴졌다.
처음엔 좌절도 했다. 왜 하필. 차라리 다리를 다쳤다면 앉아서라도 계속 연주를 할 수 있었을텐데. 밴드 친구들은 자기일인 것마냥 함께 슬퍼해줬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동정했다.
침묵 속을 파고드는 우울함이 싫다. 그는 그런 인간이었다.
…이런 일로, 내 인생이 여기서 끝나나? 아니!
아직 한참 남았잖아. 이제 시작이야.
뭘 할 수 있을까. 부모님을 도와 농사나 할까. 평범한 회사원이 될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았다. 마음에 드는 일을 찾기 위해.
4. 문제 될 거 없어
그러던 중 한 악기점에서 직원으로 일하게 된다. 사장님은 좋은 분이셨다. 가게에서는 항상 다양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낡은 나무 냄새가 났다.
굳이 연주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악기는 만질 수 있다. 피아노를 조율하고, 끊어진 바이올린 줄을 바꾸고, 부서진 기타 바디를 수리하는 방법을 배웠다.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다고. 앞으로도 계속 이 일을 하고 싶다고. 그래서 기술을 알려주는 학교를 다시 다녔다. 사장님은 여러 도움을 주셨다. 손님을 대하는 법… 일을 받는 법… 어찌 보면 또 다른 선생님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홀로 가게를 차리게 됐다. 소박하지만 번듯한 공간을 보면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친구들은 새로운 멤버를 찾았고, 도시로 올라가 앨범을 냈다고 한다. 팬들도 생기고, 방송에도 나가게 됐다고. 앞으로 꼭 네 가게에만 찾아갈테니 확실하게 봐달라며 신신당부를 하더라.
어쨌든 소원이 이뤄지긴 한 걸까?
그래, 더 유명해져서 내 가게 이름 좀 널리 알려줘라! 최고의 실력이라고 말이야!
위치는 달라졌지만 그는 여전히 음악을 사랑한다.
멈춰있기에 인생은 짧고, 세상은 넓다. 행복은 어디서나 찾을 수 있다.